베틀

 

한강공원을 찾았으나 비가내려 지하철 3호선 잠원역을 들리게 되었다. 잠원역(蠶院驛)은 옛날에 이곳에 누에치기를 권장하던 잠실을

두었기 때문에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될 때 송파구 잠실과 달리 잠원이라 하고 지하철 개통 때 역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한다.

역대합실에 명주 베틀이 전시되어 있고 베틀관련 전시물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베틀

 

 

베틀의 부분명칭  퍼온 사진(한국의 농기구)

명주 ·무명 ·모시 ·삼베 등의 피륙을 짜는 틀.

 

목재로 만들었으며, 2개의 누운다리에 구멍을 뚫어 앞다리와 뒷다리를 세우고 가로대로 고정시켰다. 여기에 도투마리를 얹고 잉아를 걸어 말코에 연결하고 앉을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두른다. 피륙은 날의 촘촘함을 따질 때에 ‘새’라는 말을 쓴다. 1새는 바디의 실구멍 40개로 짜는 것을 말하며, 한 구멍에는 두 가락의 실을 꿴다. 명주와 모시는 보름새(15새)가 가장 좋고, 무명은 보통 9새로 짜나, 9새 이상의 새로 짜는 경우도 있다. 무명과 명주는 시기를 가리지 않으나 삼베와 모시는 추석이 한계로 찬바람이 나면 짜지 못한다. 찬바람이 나면 베가 버져서 바디를 오르내리기 힘들며 북을 넣기도 힘들다.

 

명주의 경우, 음력 4월 초에 누에 종자를 사서 뽕잎을 먹이며, 5월경에 누에가 고치를 짓는다. 이것을 따서 따가운 햇볕에 잘 말린 뒤, 실솥을 걸고 끓는 물에 적당한 분량을 넣고 자애에 걸어 돌꼇에 올린 뒤 실대롱에 감아서 날았다가 바디에 꿰어 맨 다음 도투마리에 올린다. 무명의 경우, 음력 4월 하순에 목화씨를 뿌려서 8월 중순께 첫물을 따며, 이것을 볕에 잘 말려, 씨아에서 씨를 빼고 활로 타서 솜이 부풀게 한 다음, 말대로 말아서 고치를 만든다. 이것을 물레질하여 실톳을 만들어 날틀에서 실을 합사한 뒤에 명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 베틀에 올린다. 삼베는, 음력 3월 말경에 삼씨를 뿌리고 가꾸어서 7월경에 베어서 삼솥을 걸고 푹 쪄서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얼레빗으로 째서 말린 뒤에 삼는다. 이 삼실을 물레에 자아서 실톳을 만들어 돌꼇에 올려 양잿물에 삶아, 맑은 물에 계속해서 삼때가 빠질 때까지 씻는다. 이것을 다시 돌꼇에서 내려 실을 사렸다가 바디에 꿰어 베를 맨 다음 베틀에 올린다. <두산백과>

 

2018.3.19  흐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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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수문장(Gate Guard)


오래만에 남대문을 지나게되어 잠시 둘러 보고 왔다. 겨울날씨라 사람은 간간히 보이나 예전과 다른 것은 수문장이 지키고 있다.

복식과 무기가 예전과 다르게 조총을 들고 있다.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일반에 홍예문을 개방한 행사날의 수문장 사진과

비교하니 많은 차이가 난다.




홍예문


수문장이 착검을 한 조총을 잡고 있다. (참고로 2006년 3월 3일  공개행사시 수문장 사진을 마지막에 첨부함)




홍예문과 천장화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홍예문을 일반에 개방하는 행사시 수문장 사진



2017.11.23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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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Torreya nucifera)-주목과


    이 나무는 이 마을 여미리 전주 이씨, 속칭 '예민 이씨'와 관련있는 나무이다. 예민이씨 가문의 李澤(1651~1719)이 1675년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로 추정수령은 약 330년이다. 이런 연유로 1982년 10월 15일 면나무로 지정되어 있으며

    관리 대장에는 수령 300년, 둘레 246cm, 높이 20m로 되어있다.

비자나무는 산림학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인데, 비자나무는 대체로 전라도의 백양산과 내장산에 자생하고 제주도에 대군락을 이루고 있는

수종으로 중부지방 이북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나무로 그 수가 드물다.


이 나무는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으로 중부지방 이북에서 자라고 있는 드문 예에 속하는 귀중한 나무이다.


이 나무의 위치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280-1 번지이다.






겉씨식물 구과목 주목과의 상록교목.


높이 25m, 지름 2m에 달한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이며 늙은 나무에서는 얕게 갈라져서 떨어진다. 잎은 길이 25mm, 너비 3mm 정도이고 줄 모양으로 단단하며 끝이 뾰족하고 깃꼴처럼 2줄로 배열한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 뒷면은 갈색이며 중륵은 뒷면에만 있다. 길이 3mm 정도의 잎자루가 있고 6∼7년 만에 떨어진다.

단성화이며 4월에 핀다. 수배우체는 10개 내외의 포가 있는데 갈색이며 길이 10mm 정도로 10여 개의 배우체가 한 자루에 달린다. 암배우체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달걀 모양으로서 한군데에 2∼3개씩 달리고 5∼6개의 녹색 포로 싸인다. 구과는 다음해 9∼10월에 익고 길이 25∼28mm, 지름 20mm, 두께 3mm 정도로 타원형이다. 종자는 타원형이고 길이 23mm, 지름 12mm로 다갈색이며 껍질이 딱딱하다.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껍질을 벗겨 버리고 햇볕에 말린며 그 열매를 비자()라고 한다.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다. 기생충을 구제하고 대변이 잘 나오게 하며 기침을 멎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재는 질이 좋기 때문에 각종 기구재, 특히 바둑판으로서 귀중한 재목이다. 기름을 짜서 식용하며, 공해에 강하므로 가로수로 적합하다. 한국(내장산)·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두산백과>


2017.4.3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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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짚공예품

 

남산한옥마을 전통 짚공예 시연장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물을 보니 어릴적 생활주변에서 흔히 보사용되었던 옛 물건들이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다시 보게되었지만 정겹기만 하다.   

멍석, 지계

 

소쿠리, 망태, 비자루, 키, 징채

 

조리와 소쿠리

 

짚신

 

 

 

계란꾸러미

 

망태와 멍석

2015.11.28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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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대한민국 보물 제 1738호)

 

살곶이다리는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와 한반도 남동부를 잇는 주요 교통로에 세워진 다리로 강릉·충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다. 전곶교(箭串橋)라고도 한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 돌다리 중 가장 길다. 살곶이다리는 1420년(세종 2년)에 다리를 짓기 시작해 1483년(성종 14년)에 완공했다.

 

명칭에 대해서는 '제반교(濟磐橋)', '전곶교', '전관교(箭串橋)' 등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살곶이다리'나 '전곶교'가 맞고 한자 이름 ‘箭串橋’는 ‘전관교’가 아니라 ‘전곶교’로 읽는 게 옳다고 한다. 1967년 12월 15일 사적 제160호로 지정 되었으나, 2011년 12월 23일 이를 해제하고 대한민국의 보물 제1738호로 지정하였다. 대다수의 석교 문화재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사적 지정요건인 인물, 역사, 사건 등을 고려해볼 때 유형문화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므로 사적을 해제하고 보물로 변경 지정하였다.

 

 

 

 

 

 

 

살곶이는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역으로, 한양대학교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울 부근이다. 이곳은 넓고 풀과 버들이 무성하여 조선 초부터 국가의 말을 먹이는 마장(馬場) 또는 군대의 열무장(閱武場)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다리를 만든 것은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이었다. 세종 즉위 후 태종은 광나루에서 매사냥을 즐기고, 살곶이에 있는 낙천정(樂天亭)과 풍양이궁(豊壤離宮)에 수시로 행차하였다. 따라서 이곳의 하천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하여 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 2년(1420) 5월 태종은 영의정 유정현(柳廷顯) ·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비로소 돌다리 세우는 공사를 담당하게 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세종 4년(1422)에 태종이 죽자 이곳을 통한 행차가 거의 없어지고, 또한 세종 3년부터 시작된 도성 안 개천(開川) · 제방축조공사로 인해 도성 밖 이곳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이용하는 백성들로 인하여 살곶이다리를 만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어, 성종 6년(1475) 9월 살곶이다리를 완성시킬 것을 양주목(楊州牧)에 명령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考)》에 따르면 성종 13년(1482) 한 승려가 방법을 고안하여 다리를 완공하자, 왕이 이를 치하하고 다리가 집과 같이 평평하여 마치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 하여 ‘제반교(濟盤橋)’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살곶이다리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장석판교(長石板橋) 중 가장 큰 규모의 다리로서, 가로로 놓인 기둥이 4열, 세로로 16열에 모두 64개의 돌기둥으로 만들어졌다. 다리 높이는 하상(河上)으로부터 10척 내외이며 기둥의 높이는 4척 가량이다. 좌우의 교안(橋岸)을 장대석(長臺石)으로 쌓고 네모난 돌기둥 교각 16개소를 세웠다. 교각의 간격은 대략 11~13척 정도이며, 돌기둥 위를 3장의 장대석을 건너지른 다음 그 위에 다시 귀틀돌을 놓아 청판돌을 받게 한 구조이다. 기둥돌 아래에는 물밑의 받침돌이 네모난 주춧돌을 지탱하고 있으며, 주춧돌 사이에는 포석을 깔아 기초를 단단히 하였다. 따라서 물이 줄 때는 이 포석 면이 드러나 마치 지금의 잠수교와 같아 ‘이층다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돌기둥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큰 혹띠기로 표면을 가공하였고 조립할 때 잔돌을 많이 사용하여 뜬 곳을 메꾸었으며 돌난간은 없다

 

고종 때 경복궁(景福宮)을 중건하면서 살곶이다리의 일부를 가져다가 석재로 썼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1913년에 다리 윗면을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보수하였으며, 1925년에 서울 지방의 을축년 대홍수로 다리 일부가 물에 떠내려간 채 방치되었다. 그 후 1938년 5월에 이 다리 옆에 성동교가 가설되자 이 다리는 방치된 채 최근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1972년에 서울시가 무너진 다리를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하천의 폭이 원래보다 넓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리 동쪽에 27m 정도의 콘크리트 교량을 잇대어 증설함으로써 원래의 모양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2009년 12월 서울시 성동구가 발굴조사를 거쳐 살곶이다리 복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2015.1.5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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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 제향(종묘대제)

 

종묘제례는 조선의 국가 사당이며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하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일년에 5번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제향 의식뿐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등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종묘제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믄 종합적인 의례이다.

 

종묘제례는 1969년부터 종묘제례보존회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제향행사는 제사 전의 준비과정과 임금이 출궁하여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 제례봉행으로 나누어져 있다.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 2001년에 유네스코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6년부터 국제문화행사로 격상되어 거행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경 도착을 했으나 영녕전의 제한된 협소한 장소로 인해 입장이 통제되고 있었다. 30여분이 지나자 퇴장하는 인원만큼 입장이 되어 들어갔으나 영녕전마당이 어깨 높이어서 찰영하기가 무척 힘이들었다. 제례를 진행하는 방송이 있기는 했으나 소음으로 명확히 들리지 않아 진행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은 종묘제례의식에 맞추어 기악, 노래, 춤을 갖추어 연행하는 종합예술로, 악기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과 항으로 벌려서서 추는 춤인 일무를 춘다. 이 곡들을 연주하는 위치와 악기 편성에 따라 악대는 등가와 헌가로 나뉘어 좌우에 있다.

 

 

 

 

 

제례절차는 진청행사, 신관례, 진찬례,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제 순으로 진행이 된다고 하나 방송이 명확히 들리지 않아 어느 절차인지는 알 수가 없어 아쉬웠다.

 

 

 

 

 

 

 

 

 

 

 

 

 

 

 

 

 

 

 

 

 

 

 

 

 

 

행사장 입구에 준비된 제례의 진행을 보여주는 화면이 있으나 한정된 인원만이 볼 수 있어 국제적 행사에 비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종묘 (2014.5.4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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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Pinus densiflora)-소나무과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 

 

솔·솔나무·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송()·적송()·송목·송수·청송이라 한다. 줄기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너비 1.5mm이다. 2년이 지나면 밑부분의 바늘잎이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새가지
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너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잎은 각기·소화불량 또는 강장제
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약용으로 쓴다. 화분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며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건축재·펄프용재료로 이용되고 테레핀유는 페인트·니스용재·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인다. 관상용·정자목·신목·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에 분포하고 한국의 북부 고원지대를 제외한 전역에 자라며 수직적으로는 1,600m 이하에 난다. 남복송(:for. aggrega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밑부분에 모여난다. 금송(for. aurescens)은 잎의 밑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황금 빛깔을 띤다. 여복송(:for. conges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끝부분에 여러 개가 모여달린다.

금강소나무(for. erecta)는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며 외형적으로 소나무의 형태이나 곰솔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소나무와 곰솔간의 잡종으로 본다. 처진소나무(for. pendula)는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형태이다. 반송(:for. multicaulis)은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결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다북하다. 은송(for. vittata)은 잎에 흰색 또는 황금색의 가는 선이 세로로 있다.

 

강화도 초지진 (2013.12.27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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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남대문(숭례문)

2008년 2월 10일 저녁 불의의 화재로 귀중한 문화재를 잃은 후 5년만에 복원된 모습을 시내를 가났다 남대문 주변만 잠시 둘러보고 왔다. 10월말까지만 1층 문루까지 개방되었으나 동절기인 11월부터는 개방을 하지 않아 1층 문루 모습은 내년 봄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문 활작'행사로 2층 문루까지 올라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때사진 일부와 함께 복원된 모습을 올려본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착공하여 1398년(태조 7년)에 완성을 했다. 그 후 여러번의 개축과 대규모의 보수 공사가 있었다 한다.

변화된 모습이 아래 사진으로 알 수가 있다.

 

 

 

2006년 3월 3일 100년만에 숭례문이 열렸을 때 모습이고 아래는 소실 후 복원한 현재의 모습이다. 복원된 돌의 일부는 불에 타 검게

그을은 모습이 보인다.  

 

 

 

 

 

 

 

 

 

 

 

 

 

 

 

 

 

 

 

 

 

 

 

 

 

 

 

 

 

 

 

 

 

 

 

 

 

남대문 (2013.11.3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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