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s Cathedral)-스테인드글라스

 

금속산화물을 녹여 붙이거나, 표면에 안료를 구워서 붙인 색판 유리조각을 접합시키는 방법으로 채색한 유리판으로 주로 유리창에 쓰인다. 착색에는 구리·철·망가니즈와 같은 여러 가지 금속화합물이 이용되며, 세부적인 디자인은 갈색의 에나멜유약을 써서 표현한다.

 

색유리를 창이나 천장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 중동지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슬람건축에는 대리석판에 구멍을 뚫어서 유리 조각을 끼워, 채광과 장식을 겸하는 방식을 많이 이용하였다. 서구(西歐)에는 11세기에 이 기법이 전해졌으며, 12세기 이후의 교회당 건축에서 이 예술은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특히 고딕건축은 그 구조상 거대한 창을 달 수 있으며, 창을 통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신비한 효과가 인식되어,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당 건축에 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큰 발전을 해 왔다. 프랑스의 샤르트르대성당, 르망대성당, 영국의 요크 및 켄터베리대성당 같은 여러 성당의 것은 12∼13세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성당에 있는 예언자 다니엘상을 나타낸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65년 또는 12세기 전반이라고도 함).

일반적으로 초기의 것은 유리의 질이 고르지 못하여 착색에 얼룩이 지고, 섬세한 표현이 잘 안 되었으나, 광선의 투과·굴절에 미묘한 변화가 있어서 오히려 매력을 더하고 있다. 14세기 이후 유리의 제작기술이 향상되어 세부적인 표현이 잘 되게 되었으나, 이는 오히려 그림과 같이 표현되어 초기의 유리가 나타내는 독특한 미가 없어졌다. 19세기 후반 W. 모리스, V. 존스 등의 예술운동을 계기로 해서 중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미가 재인식되고, 다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F. 레제, 마티스, H. 루오 등이 현대건축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활용하게 되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 (2013.8.5  맑음)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s Cathedral)-성화와 조각

 

  성당이 크고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성화와 조각상들은 벽면에 있어 창으로 빛이 들어와 역광으로 노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사진 찰영이

  쉽지는 않았으나 가능한 많이 담아 보려고 무리한 찰영을 하였다. 하나하나의 내용은 파악할 길도 없고 물어 볼 수도 없어 아쉬움이 컸다.

 

 

 

 

 

 

 

 

 

 

 

 

 

 

 

 

 

 

 

 

 

 

 

 

 

 

 

 

 

 

 

 

 

 

 

 

 

성 비투스 대성당 (2013.8.5  맑음)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s Cathedral)-첵코 프라하

 

프라하성 중앙에 있다. 보헤미아의 군주들이 대관식을 올리고 사후 매장되어 온 장소인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에서 가장 큰 교회일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교회이다. 성당의 기원은 925년, 벤체슬라우스 1세(바클라프) 공작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부터 받은 성물인 성 비투스의 팔을 보관하기 위해 교회를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1060년 이 교회는 한차례 증축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당당한 고딕 양식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344년 카를 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

 

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였다. 그가 1352년 숨을 거두자 당시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었고, 이후 파를러의 아들과 또 다른 건축가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갔다. 공사는 후스(Jan Hus)의 종교개혁 때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완공되고, 17세기에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1753∼1775년 사이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첨탑 높이 100m에 이른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의 ‘장미의 창’이 인상적이다. 성당 안쪽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제작한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이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체코 왕들의 석관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본당 주위에는 체코의 수호성인 성(聖) 바츨라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화려한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의 벽면은 보석과 도금으로 장식되었고, 여러 성인들과 성서 속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고 예배당은 1000개가 넘는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  

 

 위사진의 우측에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성당은 무료이나 내부 제대가까이 관람을 할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좌측문을 통해 입장하고 우측문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

 

 

 

 

 

 

 

 

 

 

 

 

 성당이 크고 많은 성화와 조각 및 스테인드그라스창이 많아 3부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제대까지 관람할수 있어 나머지 일행은 밖에서 쉬고 있었다.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2013.8.5  맑음)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s Cathedral)-첵코 프라하(1)

 

 

보헤미아의 군주들이 대관식을 올리고 사후 매장되어 온 장소인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에서 가장 큰 교회일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교회이기도 하다. 성당의 기원은 925년, 벤체슬라우스 1세(바클라프) 공작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받은 성물인 성 비투스의 팔을 보관하기 위해 교회를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1060년 이 교회는 한 차례 증축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당당한 고딕 양식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344년에 접어들어서였다. 건물은 아라스의 마티아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는데, 1352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독일 건축가 페테르 파를러와 역시 건축가였던 그의 가족들이 감독을 맡은 가운데 작업이 계속되었다. 파를러는 대단히 창의적인 건축가였으며, 성 비투스 성당의 둥근 천장은 고딕 건축의 걸작이다.

성 벤체슬라우스 예배당은 특별히 흥미를 끄는 부분인데, 이곳에는 보헤미아에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순교당한 성 벤체슬라우스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다. 이 예배당은 준보석으로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 벤체슬라우스의 일생을 나타낸 장면이 있다.

마티아스와 파를러 가족의 노력에도 성당은 완공되려면 먼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몇 군데 증축되기는 했어도 이 성당은 19세기까지 미완성 상태였다. 1844년, '성 비투스 대성당 완공을 위한 조합'이 탄생해 성당을 고딕 양식으로 완성시키고 고딕 양식이 아닌 장식부를 제거해 버린다는 목적을 세웠다. 진행 과정은 더뎠으며, 성당은 1929년, 건축이 시작된 지 거의 600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성 벤체슬라우스 예배당을 포함해 2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네이브에 있는 20세기에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놀라우리만치 훌륭하다. 성단소와 지하 묘지에는 여러 왕실 일원들의 무덤과 대리석 관이 보관되어 있다. 이 성당은 1992년 뉴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첵코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2013.8.5  맑음)

 

체스키크롬로프 종탑(Hradek S Vezi, Little castle with tower)-체코 

 멀리서 우뚝 솓아 보이던 아름다운 체스키크롬로프 종탑에 도착하여 종탑을 올라 마을 전체를 구경하기 위해 입장권을 구입했다.  ↑↓ 

 종탑벽면을 따라 원형계단을 오르다 보면 중간쯤 전망대에서 세계문화유산인 마을 전체를 둘러 볼 수가 있다.  ↓  

 

 

중간 전망대 못미처 벽면에 둥근 창으로도 마을이 보인다. 

큰 종이 두개가 걸려있다. 

 

더운 날씨에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이 들어 전망대에서 쉬어가며 한바퀴 돌며 마을 전경을 구경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첵코 체스키크롬로프 종탑 (2013.8.4  맑음)

체스키크롬로프 거리-체코 

 

체스키크롬로프 중앙광장에서 골목을 통해 체스키크롬로프성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중세풍의 집들이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어진다. 거의가 여행객을 위한 숙박, 상점, 식당들로 여행객과 어우러져 추억의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진다.   

 

 

 

 

 

 아내는 색다른 무엇이 보이면 호기심과 애교로 열심히 추억을 쌓아 나간다.

 

 

 

 체스키크롬로프를 S자로 휘감고 돌아흐르는 블타강에서 많은 관광객이 배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며 뜨거운 오후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다리위에서 쉬면서 물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구경거리의 하나가 되곤 했다.

 

 오후의 태양은 뜨거워 그늘에 쉬면서 물을 마시곤 했다.

 

 

 

 

 

 체스키크롬로프성이 바위위에 보인다.

 

 

 

 

 유명한 이발사의 다리

 

 

 

 체스키크롬로프와 종탑을 이어주는 망또다리

 

 

 

 

 

 망또다리밑을 통과해 언덕을 오르면 체스키크롬로프성에 이른다.

 

 

 

 

 

첵코 체스키크롬로프 성 (2013.8.4  맑음)

체스키크롬로프 스보르노스티광장(Svoornosti Square)-체코 

 

체스키크롬로프 마을 외각도로를 건너 골목을 통해 마을 광장으로 이어지는 좁은길 주변에는 중세에 지은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꽃으로 장식을 해 놓아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골목으로 이어지는 주텍은 여행객을 상대로 한 펜션이나 상점및 식당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골목사이 사이로 체스크롬로프 성의 종탑이 보인다.

 

 

 교회를 지나면 체스키크롬로프 중앙광장이 나온다.

 

16세기 이래로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 도시의 중앙광장이다. 1993년 체스키크롬로프가 유네스코로 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정된 이후 이 도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체스키크롬로프를 찾은 단체관광이 이곳에서 부터 시작이 되어 항상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모여 관광이 시작되고 마무리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의 우측이 시청사이다. 

 

 

 1715년 페스트퇴치기념으로 추수감사절에 Matous Jackel에 의해 세워진 성삼위일체 Marian Plague Column라는 상징물이 우뚝 서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때 일단의 관광객이 삼위일체탑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광장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성으로 올라가게 된다.

첵코 체스키크롬로프 중앙광장 (2013.8.4  맑음)

 

 

체스키크롬로프 역사지구(Historic Center of Chesky Krumlov)-1

 

첵코 프라하에 머무는중 4일째 되는 날 체스키크로로프 관광길에 나섰다. 전차를 타고 안델역에 도착해 체스키크롬로프행 버스를 타고 3시간 걸려 체스키크롬로프 버스터미날에 도착 하였다.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체스키크룸로프가 있다. S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체코가 공산 국가였던 시절에는 그저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300여 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 유적으로 등록되었으니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세기 남 보헤미아의 비테크 가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을 짓기 시작한 것이 체스키크룸로프의 시작이다.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건물들이 일부 추가 되었으나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다. 중세 마을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체스키크롬로프 버스터미날에 도착을 해 한적한 광장길을 따라 3~5분 얕으막한 언덕을 오르면 언덕아래에 붉은 지붕의 마을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날에 도착하여 마을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언덕을 오르니 더위로 잠시 쉬면서 마을 전경을 구경하고들 있다. 

 

블타바 강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체스키크롬로프 마을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화속의 아름다운 중세마을을 보는 기분이다.  

 

 

 

그늘에서 쉬면서 마을 전경을 바라보는 일행 

 

마을을 돌아 흐르는 블타바강에 카약을 타고 강을 내려가는 모습이 시원히게 느껴진다.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작은 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전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마을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블타바강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모습의 안내판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첵코 체스크크롬로프  (2013.8.4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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