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사(南長寺)

 

남장사 일주문  ↑↓

 

이 건물은 잡석(雜石)으로 낮게 쌓은 축대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양 쪽에 놓고 세웠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442호.  ↑↓ 

 

 

일주문 천정의 그림 

 

범종각 

 

 

보광전 

 

 

 

 

극락보전 

 

 

 

 

 

보광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989년 4월 10일 보물 제99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33cm이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있고, 얼굴은 눈·코·입 각 부분이 모두 잘 정제되어 있다. 특히, 어깨에 닿을 듯한 긴 귀는 삼도(三道)와 잘 조화되어 위엄을 자아낸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양쪽 팔에 걸쳐서 유려하게 흘러 양쪽 무릎을 덮었고, 옷주름은 팔과 다리의 끝부분에만 나타나 있을 뿐, 대담하게 생략하고 극도로 단순화시켰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겹친 지권인(智拳印)이나,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상과 비교해 보면 손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좌상의 뒷면에는 왼쪽 어깨로부터 내려진 옷자락이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비례에서는 머리·어깨·무릎 너비 등이 알맞은 크기로 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엄숙한 얼굴표정, 군의(裙衣)를 묶은 띠매듭,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U’자형 옷자락 등에서 관음전의 목각 후불탱(木刻後佛幀:1694년 작, 경북 유형문화재 58)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하고 장대한 체구, 그다지 두껍지 않고 덜 도식화된 옷주름, 단아한 얼굴, 안정된 자세 등은 이 불상이 상당히 이른 시기의 조선 전기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조선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남장사의 목각탱은 나무에 번각한 것으로 불화라기보다 목조 조각품이다.

이 목각탱은 남장사 보광전의 주존불(主尊佛)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 뒤에 있는 후불탱(後佛幀)으로 가로 236cm, 세로 226cm, 두께 10∼12cm이고 판목 8장을 조립하여 만들었다.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연화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불(阿彌陀佛)로서 수인(手印)은 설법인(說法印)이고 광배(光背)는 거신화염광(擧身火焰光)이다. 극락에서 미타불이 법회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으로 아미타 정토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나타내고 있다.

 

주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3구, 상하 4구씩 전체 24구를 배치하고 있으며, 맨 아래쪽에 칼·비파·용·보탑 등을 든 사천왕(四天王), 그밖에 관세음보살좌상(觀世音菩薩坐像)과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을 비롯해 합장을 하거나 연꽃을 든 보살상과 비구상 등이 묘사되어 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연화좌 위에 앉았고 다른 여러 상은 입상이거나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각 조각상 사이에는 보상화무늬[寶相華紋]와 연화무늬, 연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다. 중앙 아미타불의 위쪽에는 두광에서 솟은 서운(瑞雲)이 피어오르면서 두 줄기로 갈라져 천상계(天上界)를 구획하고 비천(飛天)이 배치되어 있다.

1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후불목각탱은 기법이 세련되고 구도도 원만하며,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태화(南長寺觀音禪院木刻幀畵:보물 923)과 더불어 조선 후기 목각불의 한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보물 제 1635호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수많은 사부대중의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賾),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 제작의 수조각승 청허는 17세기 대표적인 조각승 청헌(淸憲)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이 불상은 17세기 전반기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데, 즉 양감이 강조된 방형의 큼직한 얼굴, 당당한 어깨, 넓고 안정된 무릎, 강직한 힘이 느껴지는 선묘를 추구하여 건장하면서도 평담한 형태미를 보여 주는데, 청헌의 작품과 양식적으로 흡사하다.

한편 이러한 형태미는 임진왜란 이후 자존심을 회복한 불교 재건사업과 맞물려 새롭게 대두된 양식적 경향으로 이해된다. 남장사 삼존상은 발원문을 통해 아미타·관음·대세지의 아미타삼존형식의 상으로 관음과 대세지 보살상의 착의형식에서 변화를 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례이다. 또한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작품 중에서 비교적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대표작품으로 볼 수 있고,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후기 조각사 연구의 기준자료가 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830년) 때 당나라에 머물다 돌아온 진감국사에 의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절의 유래와 관련한 기록이 최치원이 쓴 사산비문 중 하나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비문에 새겨져 있다. 처음 세워질 때의 이름은 장백사였으나 고려시대 각원국사에 의하여 지금의 이름인 남장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남장사로 오르는 길에 작은 돌장승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생긴 모양이 제멋대로라 더욱 정감이 간다. 이 장승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더 오르면 절의 입구에 다다른다.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극락보전이 나오는데 원래 절의 본전은 보광전이었으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새로 지으면서 이곳이 본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의 꽃창살 조각이 아름다우며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 후기에 그려진 멋진 불화들을 볼 수 있다.

보광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두 가지 있는데 철불좌상과 목각탱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초까지 금동불이 아닌 철불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하나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철불 뒤로 목각탱도 귀한 유물로, 관세음, 대세지, 나한 등 24구가 새겨져 있다. 보광전의 목각탱도 아름답지만 절에서 뒤로 난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만나는 관음전에서 볼 수 있는 목각탱은 용문사
의 그것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관음전 목각탱은 보광전에 비하여 그 새겨진 모습이 더욱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며 화려하다. 가운데 본존불이 있고 주변으로 네 명의 보살과 석가의 제가인 아난과 가섭이 있으며 바깥에는 사천왕상이 부처를 지키고 있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다.

 

상주 남장사 (2012.11.24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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