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로 잃은 숭례문
어제 저녁 9시경 숭례문(남대문, 국보 1호)의 화재소식을 접하고 TV중계를 보며 근 4시간을 마음조리며 불길이 잡히기를 기대했지만 새벽 1시 50여분경 숭례문이 불길에 무너저 내리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며 허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에 우리가 경험한 대형사고로 이천 냉동공장화재, 서해 유조선 기름유출사고로 아직도 상처가 가시지 않고 있는데 또 다시 소중한 우리문화유산을 화재로 잃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국보 1호 숭례문을 잃고 말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사고가 날때마다 시끄럽게 떠들다 흐지부지 하지 말고 조용히 두번다시 작은 사고라도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국민들이 마음놓고 생활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06년 3월 3일 숭례문 100년만의 개통식날 숭례문을 공개하여 가까이서 돌아 볼 수가 있었던 사진을 찾아 올리며 아쉬움을 달래보며 소중한 우리문화유산이 영원히 보존이 되기를 바란다.
숭례문 100년만의 개통식(2006년 3월 3일 행사)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중앙통로인 홍예문이 100년만에 일반에 개방하는 행사가 오늘 오전 11시에 숭례문에서 열렸다. 이어서 정조대왕 화성행차및 과거를 보러 서울로 들어오는 선비의 행렬, 시집가는 가마와 상인들의 행열에 이어 각설이패의 행렬을 끝으로 일반인들이 홍예문을 지나는 순서로 이어저 많은 시민들이 홍에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에 많은 카메라맨이 사진을 찍고 있어 행사장은 아주 복잡했다. 오늘은 2층 문루까지 개방이 되어 2층 문루에서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숭례문은 서울성곽의 정문이며 도성의 남쪽에 있어 남대문으로 불린다. 태조 7년(1398)에 처음 건립한 후 세종 30년(1448)에 크게 고쳤다고 한다. 석축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문인 홍예문이 있으며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인 2층 문루를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처마를 4면에 두는 우진각 지붕을 얹었다. 처마 끝은 여러 개의 나무로 짜 맞추어 댄 전형적인 다포(多包) 양식의 건물로서, 현존하는 성문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건물내부의 위층 바닥은 널판지로 깐 널마루이고 아래층 바닥은 홍예의 윗면인 중앙칸만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짠 우물마루일 뿐 다른 칸은 흙바닥으로 되어있다.
문에 걸린 현판인 편액의 글씨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지봉유설)에는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숭례문의 편액이 여느 문의 편액과 달리 세로로 쓰여있는 것은 숭례(崇禮)의 두 글자가 위아래로 있을 경우 불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로써 경복궁을 마주 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홍예문 개통식 행사
행사에 참가한 시민
수문장
통과절차 의식
어가행렬
은물(恩物)행렬
정조대왕
문무백관
과거 보러오는 선비행렬
말탄 신랑과 가마탄 혼례행렬
상인행렬
각설이 행렬
파수군이 호패가 없다고 않된다하여 떼를 쓰는 각설이
일반 시민들이 100년만에 홍예문을 통과하는 대열
홍예문 천정 벽화(남측에서 본)
홍예문(북측에서 본)
2층 문루를 오르는 시민들
2층 문루내부
2층 문루 처마
2층 문루를 보고 내려오는 대열
홍예문 문고리
숭례문 전경
계속 이어지는 2층 문루로 오르는 대열
은물(恩物)
혼례용 가마
상인들의 매물
2006.3.3 숭례문 100년만의 개통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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