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실내조명이 어두워 사진이 흐릿하다. ↑↓

 

 퍼온 사진  

 

7세기 초 백제의 금동향로.

 

전체높이 64cm, 지름 20cm이다.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되었으며 당시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 또는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라고 불렀으나 문화제청에서 백제금동대향로()로 등록하면서 정식명칭이 되었다.

 
봉황뚜껑장식, 봉래산이 양각된 뚜껑, 연꽃잎으로 장식된 몸통, 용받침의 4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뚜껑의 꼭지 위에 있는 봉황은 꽁지를 쳐들고 날개를 활짝 펴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5인의 악사()가 둘러 있고, 다시 아래로는 74개의 산이 중첩되어 있다. 몸통에는 우아하고 정교한 연꽃 무늬가 새겨 있으며, 한 마리의 용이 입을 그릇바닥 중심에 붙이고 몸을 틀어내려서 받침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만들어진 박산향로()의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박산향로는 대개 바다를 상징한다는 승반() 위에 한 개의 다리를 가지고, 그 위에 중첩된 산봉우리가 있는 동체를 가진 향로로서 신선사상이 조형적 배경이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이 향로에도 신선사상이 짙게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선으로, 그리고 동물들도 현실세계의 동물이라기보다는 신비의 이상향에 살고 있다는 상상의 동물들로 볼 수 있다.

 

또한 몸통이 연꽃봉오리 모양인 데서 연화화생()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연화화생은 극락세계의 연꽃에서 만물이 신비롭게 탄생된다는 불교의 생성관으로, 이 향로에서의 연꽃도 뚜껑의 산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는 74개의 산의 능선 테두리마다 가해진 빗금 모양의 화염무늬에서 알 수 있다. 화염무늬는 불교의 연화화생의 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연화화생관은 용과 연꽃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 즉, 이 향로에서 용은 바다의 상서로운 짐승으로서 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 이외에 불교적인 관념을 담고 있다. 용이 토해내는 기를 불교의 연화화생의 기로서 해석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용의 입에서 토해진 기는 연꽃으로 토해져 이 향로의 몸통으로 화생되는 것이다.

 

이 향로의 또 다른 조형적인 배경은 음양설이다. 음에 해당하는 아래로부터 수중동물의 정화()로 용을 등장시키고, 그 위로 연꽃 위에 생성된 지상의 선계()를 나타냈다. 그곳에는 다양한 동물과 악사를 비롯한 신선이 배치되고, 정상에는 봉황을 배치하였는데 봉황은 곧 양의 정수가 된다. 그리고 수중생물뿐만 아니라 지상의 신선과 동물 등이 혼재되어 있는 몸통은 향로에서 그 높이가 중간 부위이듯 음과 양이 어우러지는 중간 선계 지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5명의 악사선인과 5개의 향연 구멍을 두겹으로 낸 것 등은 음양설과 결합되어 나타난 오행설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향로의 꼭대기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봉황은 예로부터 음악과 춤을 동반한다고 하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밑에서 5마리의 원앙이 봉황을 바라보고 있으며 선계의 악사들도 봉황을 맞아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산중의 신선들은 음악과 함께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낚시하며 머리를 감기도 하고, 말을 타고 수렵을 즐기기도 한다. 이 밖에도 이 향로에는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산중턱을 가르며 난 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는 폭포, 낚시터가 된 잔잔한 호수 등을 볼 수 있다.

 

향로의 대좌를 용으로 삼은 예는 중국의 한대부터 나타나지만, 당시는 용의 표현이 미약하고 연화화생의 표현도 없던 시기이다. 향로의 몸통을 연꽃모양으로 구성한 형태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인 400년 경부터 등장하고 있으나 이 향로같이 고도로 고안된 연화화생의 표현이나 봉래산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인물, 동물 등의 묘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 향로는 중국향로의 형식을 따랐으나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는 중국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한 대표적인 백제 미술품이다. <Naver백과>

 

국립부여박물관 (2012.7.24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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